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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2 12:02

우리동네 정씨

조회 수 307 추천 수 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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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edence_Clearwater_Revival_1968.jpg

잘나가던 시절의 크레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멤버들. 근데 잘 보면 어서 많이 보던 얼굴 같다.(왼쪽 부터 왕건, 양치기영감, 똥할배, 오지랍영감)



우리동네 정씨


그가 태어난 곳은 이북 함흥이라고 한다.

그가 태어나 얼마 못 가 부모님이 폐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가 수염도 나기 전에 전쟁이 났다.

그해 겨울 피난길에 동상으로 발가락 한 개를 잃었다.


여기저기 피난을 떠돌다보니 춘천이었다.

캠프 페이지 앞 양키시장에서 물건 배달일을 시작했다.

가게 주인이 마침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미국 노래라 제목도 모르고 뜻도 몰랐지만 이상하게 그 노래들이 좋았다.

그 가게가 잘 되나 싶더니 주인이 미제 물건을 팔다 걸려 잡혀 들어가고

갈 곳이 없어진 틈에 마침 댐을 짓는다는 소식에 트럭 조수로 취직을 한다.


소양댐 공사가 끝나 일자를 잃자 다시 광산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장가도 들었다.

광산에서 사고가 나 한 쪽 다리를 절면서도

옥시기 밥과 간장만 먹으며 춘천 외곽 산 밑에 밭을 사고 농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식 넷을 키워 시집 장가를 보냈다.

그리고 재작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안 그래도 지겨워 밭에 고꾸라져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차라리 병이라도 얻었으니 이참에 밭은 도지를 주고 쉬어야겠다고 말하고서도 그는 여전히 땅게처럼 밭에 붙어산다.

팔십을 앞둔 그에게 이제라도 땅 팔아 좋은 집 짓고 편히 살라고 주변에서 말하지만

벌어먹고 사느라 자식들 어떻게 컸는지 봐주지도 못했는데 이거라도 안 주면 자식들 어떻게 보겠느냐고 한다.


얼마 전 그의 아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라디오를 사 왔다.

전원만 켜면 자동으로 몇 천 곡의 뽕짝노래가 나오는 라디오였다.

그의 옆집 사는 나는 그의 땅 옆길에 차를 세운다.


지난 여름, 그의 집 앞 전봇대가 벼락 맞아 TV가 고장났다.

새 TV를 사던 날, 나는 그의 집에 가서 연결을 도와드렸다. 그걸 보던 그가 물었다. 여기에 이 라디오에 수지큐 노래좀 넣어 줄 수 있냐고.

그의 라디오에는 4기가짜리 메모리가 들어있었다.

나는 수지큐 뿐 아니라 탐존스, 롤링스톤즈, 닐 다이아몬드, 씨시알, 비지스, 호세펠리치아노도 넣어드렸다.

그날부터 그의 밭에는 거칠지만 흐느적거리는 60년대 팝송이 흘렀다.

그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에 대해 내가 가끔 아는 척을 하면 니 같은 젊은 놈이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퉁을 준다.

아유, 저 레드제플린, 키쓰, 이글스도 알어유, 그러면 햐, 요게 어디서 줏어 들은 들은 풍월은 있어가주구 그러신다.


그가 라디오를 허리띠에 차고 시티100 오도바이로 동네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그더러 양키시장 배달부로 다시 취직했냐고 농을 건넨다.

그러면 히죽거리며 옛날 양키시장 무용담을 자랑한다.

지금은 캠프 페이지도 없어지고 양키시장도 없어졌고 파킨슨병이 남아 손을 떨지만 그는 여전히 멋있다.


  • profile
    앰푸불빛 2017.10.12 12:40
    음미... 양영감님 용안은 여그서 처음 보능구먼요. 예수님츠럼 멋져부러.
    오영감님은 역시 끼가 있어보이는 포즈...

    파킨슨병은 몸이 불편한 것일뿐 정신이나 감성과는 관계없는 거 같네요.
  • profile
    손.진.곤 2017.10.12 13:23
    감쉥은 절대로 아부하는 스탈입니다 ㅋㅋㅋ

    건이와 똥할배는 비스므리하다 치고
    양용감님과 오지랍성님은 절대로 안비슷해요 ....
  • ?
    감쇙 2017.10.12 13:48
    파킨슨병의 원인 중 하나가 농약에 대한 노출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다 싶으니 농사로 평생 사신분들 서러우실 수 있겠다 싶습니다
  • ?
    섬집ㅇㅇ 2017.10.12 13:07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을 사람으로 봐 주는
    감쇙 같은 분들이 있어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입니다.
    음악과 더불어, 얼라들과 더불어
    JMJS하시소.

    JMJS: 인문학적 용어로 쉽게 풀이하면 "잘 먹고 잘 살(아라, 자, 으십시오)"입니다.
  • ?
    감쇙 2017.10.12 13:47

    한 명 노인의 삶이 박물관이나 도서관보다 많은 곡절을 지니고 있지 싶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처럼 한 가지 일로 먹고 사는 복이야 말로 비할 바 못된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동네 어르신 대부분 휴대용 라디오가 유행입니다.

    그러고보니 그분들이 일해서 낸 세금으로 덩치 커진 방송국들이 정작 음악은 어르신이라는 수요자를 외면하고 아이돌 음악 위주로 방송하는 것 같아 섭섭합니다.

  • profile
    손.진.곤 2017.10.12 13:21
    감쉥 오랜만이요 ㅋㅋ

    좋은글 뜸했시요 ..게속 존글로 안부전해주이소
    정씨할배는 울 엄니 삶과 비슷하네요

    이북출신 일찍고아 [일사 후퇴때 ] 양키물건장수 수양딸 ......근데 일찍 가셨지요
    괜한날 우울해집니더 책임지소
  • ?
    감쇙 2017.10.12 13:43

    우리시대 어른들 살아오신 이야기 자체가 무협지입니다. 기적같은 삶이 이어져 현재의 주름살에 모여 있지 싶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여가라야 오도바이 타고 오일장 구경다니는 게 전부에 비오는 날 하우스에서 동네 노인들과 파전에 막걸리에 담배 몇 가치지만
    그분들도 죽어라 일해 자식 건사하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사시는데 이걸 누군가가 들어주면서 같이 늙어가는 재미...

  • profile
    못 듣던 소리 2017.10.12 14:03
    글 내용에 감동 감동 감감동...

    좋은 글, 감사합네다
  • ?
    삼류 2017.10.12 17:06
    아이고 바로 우리 헌대사네요
    재밌고도
    슬픈 얘깁니다
  • ?
    양치기영감 2017.10.12 19:37

    그 동네 정씨 할부지 백내장 수술부터 해야겟소.
    20살때 마흔으로 보여 재취자리 중신 들어온 감생을 보고 "니 같은 젊은이" 라꼬?

    지금 감생 비주얼로는 지하철표 안끊고 타도 될껄 ? 아메..

  • ?
    순토 2017.10.14 00:03
    옥시기!
    지금 맛으로 쪄먹는 것은 옥수수
    옥시기는 쪄먹고, 갈아먹고, 팔아먹고
    소먹이 옥시기대 작두로 썰다가 손가락 잘리기도
    옥시기는 산골 사람들 삶 자체였지요
    감쇙님 글이 옛날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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