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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통해 뿜어내는 관악기의 소리는 호소력이 현 보다는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감이 있습니다. 2월엔 관악기의 매력과 마력을 느낄만한 곡들을 추려보았습니다. 
 
 고교시절, 밴드부를 했었는데 인문계였고, 학교의 지원은 몹시 열악했으며, 무엇보다 교장선생이 밴드부를 몹시 혐오했습니다. 사고를 잘 치고,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주범으로 늘 밴드부가 지목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강렬하게 뿜어대야 제 맛인 관악기를 다뤄서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급기야 교장선생은 해악과도 같은 밴드부를 강제 해산시키고 얌전하고 기품있는 현악부를 만들었는데,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까닭인지 교장선생이 급사하는 바람에 실내에서 기생오라비들처럼 폼만 잡던 현악부도 변변한 활약도 못하고...그럴 기회나 있었을까....사라졌던 일이 기억납니다.


 관악이 천대받고 현악이 숭상받는 풍토는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게 전반적인 인식이긴 한지,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에서도 현악이 관악에 비해 몹시 취약하다는 평들이 많고, 그 점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발돋음하는 데에 장애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은 오디오 쪽에서도 비슷해서, 관악이 제대로 표현되는 오디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도 관악이 돋보이는 곡들을 한번쯤 집중해서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ROSSINI: Guillaume Tell - Overture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나직하고 묵직하게 서두를 여는 첼로의 읊조림, 그 음률은 정적과 고요,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올 혼돈을 암시하는 긴장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윌리엄 텔 일당이 숲을 뛰쳐나와 왕의 병사들과 격돌하는 장면을 그리는 듯한 두번째 대목은 내뿜는 것 같은 트럼본의 질주입니다. 세번째는 오보에와 피콜로가 평화롭게 어울리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그리다가, 네번째는 민심을 등에 업은 윌리엄 텔과 독립군들이 짱짱한 트럼펫들을 앞세우고 트럼본 부대와 함께 백주대로를 활보하는 행진곡풍입니다. 관악기들이 이처럼 재미있게 역할이 잘 짜여진 곡도 드문 것 같습니다.
Carlo Maria Giulini의 지휘, Philharmonia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2.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 64 - II. 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호른의 노래가 나직히 울려퍼질 때 멜로디는 꽤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ocean gypsy'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renaissance'란 그룹의 여성보컬인 Annie Haslam이 클래식곡들의 선율들을 따서 가사를 붙인 노래 모음집 중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좀 더 가면 민해경의 노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에서 따간 선율도 들립니다.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꾸며진 색채가 가득한 조잡하고 불성실한 교향곡으로 판정을 내렸다는 5번교향곡이지만, 서두의 호른부터 시작해서 오보에와 클라리넷 등의 관악기가 다채로운 색깔을 잘 보여줍니다.
Otto Klemperer의 지휘에 Philharmonia Orchestra입니다.


3.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V 622 - II. Adagio


클라리넷의 매력에 흠뻑 빠질만한 곡으로는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가장 앞에 서지 않을까 합니다. 모짜르트의 서정과 슬픔이 찬란하고 엄숙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에 클라리넷의 곱고 단아한 음색이 빛을 더합니다.     
Jack Brymer의 클라리넷과 Sir Thomas Beecham의 지휘, 그리고 Royal Philharmonic Orchestra입니다.


4.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 14 - V. Songe d'une nuit de Sabbat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5악장에 등장하는 관악기들의 얼굴은 관악기 파트에서 주로 베이스를 담당하는 튜바입니다. 행진곡의 왕 수자가 초저음용 수자폰을 개발하기 전까진 가장 큰 관악기였습니다.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담당하는 운명인 튜바가 관악기 파트의 선율을 선도하는 것만으로 환상교향곡 5악장은 특징과 개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의 연주, Rafael Kubelik의 지휘입니다.


5~8. RESPIGHI: Pini di Roma

I. The Pines of the Villa Borghese
II. Pines near a Catacomb
III. The Pines of the Janiculum
IV. The Pines of the Appian Way


1900년 들어 활동을 시작한 이 이탈리아 작곡가는 로마에 관한 세가지의 곡을 남겼는데 그 중 로마의 소나무를 그린 곡입니다. 이 곡엔 로마에 속한 네 곳의 소나무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소나무들에 레스피기가 나름의 예술적 영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네 곡에 걸쳐 거의 모든 관악기들이 망라되어 제각기 한몫씩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아피아 길의 소나무에선 옛 로마군대의 진군로였던 지난 역사를 겹쳐 떠올리며 로마의 영광을 장중하게 그려냅니다. 그 영광을 그려내는 데에 관악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István Kertész의 지휘와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9.STRAVINSKY: The Firebird (L'oiseau de feu) - Finale


공주와 왕자, 그리고 사악한 마왕, 거기에 마왕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불새, 이 정도면 얘기는 다 된거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출세작인 불새의 마지막은 불새가 왕자를 도와 마왕 카쉐이와 그 부하들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낸 뒤, 왕자와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듯 힘차게 비상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날아오르는 불새의 힘찬 날갯짓을 표현하기엔 아마 관악기들의 합창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Sergiu Celibidache의 지휘, SWR Stuttgart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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